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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한 익힘이 좋았던 고깃집 시집 - 천호역 삼겹살 본문

맛있는 이야기🍚

느긋한 익힘이 좋았던 고깃집 시집 - 천호역 삼겹살

박수8 2017. 11. 1. 20:13

돼지고기를 구워먹는 곳, 우리는 흔히 이런 가게를 '삼겹살집' 혹은 '고깃집'이라고 부른다.

천호역의 쭈꾸미거리 바로 옆에 위치한 '시집'이라는 고깃집을 다녀왔다.




'시집', 고깃집과는 거리가 먼 이름이라는게 내 느낌이다.

'세상 가장 낭만적인 맛'이라서 시집이라 이름지었다는 이 곳, 시작이 흥미롭다.



'고깃집'하면 꺼려지는것이 외투와 가방에 배는 냄새다.

'시집'은 하얀비닐봉투를 주는 것 대신, 한켠에 커다란 사물함을 만들었다. 세심한 배려가 좋다.



자리에 앉으니 무언가 낯설다.

보통 가운데에 있어야 할 숯을 넣고 고기를 굽는 화구가 테이블의 한 쪽으로 치우쳐 있다. 금세 그 의도를 알아챈다. 고기를 직접 굽지않고 구워주는 곳이다. 내가 화구를 옆으로 멀찍이 밀어놓은 것도 아닌데, 괜스레 조금 민망하다. 내가 고기를 구워달라고 한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테이블의 가운데에 커다란 불판이 아니라 반찬들이 정갈하게 정렬되어 있으니 한결 정돈된 모습이다. 오른손잡이인 내가 왼쪽에 놓여진 반찬을 집으려고 뜨거운 불판 위를 위험하게 횡단하는 일이 없다.



삼겹살과 목살, 그리고 김치찌개와 술을 주문한다. 고기는 1인분에 12,000원 국내산 생고기를 사용한단다. 주문은 하지 않았지만 갈매기살과 항정살도 있다. 



사실 직접 고기를 구워주는 가게를 그렇게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보통 주문한 고기를 몽땅 불판에 올려 구워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고기를 한 덩어리씩 올려가며 천천히 구워먹는다. 오랫동안 불판에 올려놓은 고기는 바싹말라버려 맛이 없다는게 나의 고기 구움 철학이다.



주문한 생고기가 다가오자 나는 긴장한다. 불판에 모두 올려 구워주겠지, 직접 구워먹는다고 말을 할까 고민했지만, 이내 까다로운 손님이 되고싶지 않아서, 그리고 전문가가 구워준 고기가 궁금해서, 그냥 지켜보기로 한다. 




역시나 한 번에 고기를 모두 올려 굽기 시작한다. 약간의 실망이 기분을 끌어내리기도 전에 구수한 고기구워지는 냄새가 행복하다. 고기들이 구워진다. 목살과 삼겹살의 환상적인 조화 앞에 무릎을 꿇는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고기가 뭘까? 나는 모든 고기를 먹는 순간의 첫번째 한 점의 고기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 그 한점이 너무도 강렬해서 '고기를 먹고 싶다'라는 생각이 자주 드는 건 아닐까싶다.



한참을 삼겹살과 목살을 음미하다보니 문득 이상하리만큼 고기가 늦게 익어 먹는 속도와 아주 잘 맞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험상 모든 고기를 올려굽는다면 지금쯤 모든 고기가 불판의 가장자리에 위태롭게 걸쳐야하는데, 아직도 많은 고기들이 불판의 한 가운데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행복하다. 구워주는 고깃집의 빠른 '고기 구움량'을 맞추기위해 급하게 고기를 먹지 않아도 된다. 바싹말라버린 고기를 먹지않아도 된다.


나중의 직원들간의 대화에서 알 수 있었던 사실이지만, 먹는속도가 느린 것을 보고 아래에 불판을 하나 덧대어서 고기를 천천히 구워주었다고 한다. 배려가 세심하다. 뒤 늦게서야 앞서먹었던 고기들이 더욱 맛있어짐을 느낀다.




시집은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웨이팅이 있을 정도로 붐비는 고깃집이라고 한다. 웨이팅이 있는 바쁜날에는 이러한 배려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시집이 한가했던 어떤 날, 나는 이 곳의 느긋한 익힘이 좋았다. 



천호역 고깃집 -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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